비교의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시73:1-16)
2022년 2월 18일(금) / 매일성경 / 시편 73편 1-16절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73:1-3)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 의로우신 하나님(1)
시편의 저자 시인이 지금까지 경험하고 알아왔던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공평하신 분이시고, 죄에 대해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앞에 정결한 마음, 순전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시인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분명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심판의 날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한 시인(2-3)
시인은 자신이 거의 넘어질 뻔했다고, 미끄러질 뻔했다고 고백합니다.그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시인의 마음속에 질투가 생겨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더 어려워지고, 예수님 믿지 않는 이들은 승승장구하고 잘 될까?누구나 한 번쯤은 이 고민을 해봤을 것입니다.시인은 이 확신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공평하신 분,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확신이 희미해져 갔습니다.하나님이 악인의 편에 서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지금까지 쌓아온 신앙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허무함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2. 절망에 근심이 쌓이는 시인(4-16)
이 시인은 점점 절망이 쌓여가고 있습니다.악인들의 행동을 열거합니다. 그들은 고통이 없는 것 같고, 도리어 힘이 강건하여 지는 것 같습니다.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당하는 고난이나 어려움, 재앙들이 악인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그들은 교만합니다. 오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은 폭력적입니다. 피둥피둥 살이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허왕된 심상이 가득합니다.언제나 남을 비웃고 악한 말을 쏟아내기 일쑤입니다.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닙니다.이래도 왜 하나님은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까?
그러면 저는 뭐가 됩니까?
지금까지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내 손을 씻었습니다. 하나님앞에 늘 정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고난을 받고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정말 절망스럽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허무해집니다.
왜 하나님은 내버려두시는 것입니까?
[나 - 나의 삶의 적용]
시인의 답답한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인과응보'라는 말처럼 '행한대로 과오에 대한 댓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왜 악인들은 잘되고, 왜 그저 묵묵하게 자신을 하나님앞에 순종해 온 나는 이렇게 고난을 받습니까?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비교의식이 있습니다.악인과 의인을 비교합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비교합니다.이러한 비교의식은 코람데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과 정반대되는 개념입니다.비교의식이 나를 넘어지게 만들고 나를 불행하게 만듭니다.내 안에 필요한 것은 비교의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