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삼하13:23-39)
2022년 10월 9일(주일) / 매일성경 / 사무엘하 13장 23-39절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삼하13:28)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삼하13:39)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한 압살롬(28-29)
압살롬은 자신의 누이를 욕보이고 내어쫒은 암논의 행동에 잠잠했었습니다.
그는 분노를 표출하지 못해서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했기에 잠잠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났습니다.
암살롬은 에브라임 근처 바알하솔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습니다. 양털을 깎는다는 것은 잔치날을 의미합니다.
아버지 다윗과 모든 형제들은 그 잔치에 초대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에게 부담을 지우기 싫어서 마다합니다.
결국 압살롬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형 암논이 동행해줄 것을 요구하고, 암논이 형제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압살롬은 복수의 계획을 이제 실행합니다.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암논이 거하게 술에 취해 있을 때를 틈타 살인을 저지릅니다.
2년을 그렇게 기다려온 치밀한 복수가 압살롬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요?
결국 암논, 다말 그리고 압살롬 세 사람 모두에게 참 불행한 결론이 되어 버렸습니다.
복수는 결코 행복으로 귀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수는 용서라는 말이 생겨난 것 아니겠습니까?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법입니다.
2. 도망친 압살롬(37-38)
압살롬은 암논을 살인하고 그술로 도망쳤습니다.
암살롬이 도망친 이유는 형 암논을 죽인 것이 누이에 대한 복수였든 어쨋든간에 분명한 살인 죄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다윗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다른 형들이 자신을 또한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속히 후련했을까요?
그 반대였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과 형제들의 눈을 피해 도망한 도망자의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3. 다윗의 슬픔(31,37,39)
다윗은 처음에는 압살롬이 자신의 아들 암논 뿐만아니라 모든 형제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한 마음으로 자신의 옷을 찢고 땅바닥에 드러누웠습니다.
그러나 요나답이 암논만 죽었을 것이라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합니다.
그리고 요나답으로부터 압살롬이 왜 암논을 죽였는지를 듣게 됩니다.
이후 다윗은 죽은 압논으로 인해 슬픈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암논을 잃은 마음은 점점 사그라들고, 오히려 압살롬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지게 됩니다.
다윗에게 찾아온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자신의 아들들이 낳은 비극적인 모습들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다윗은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죄는 무서운 것이고, 무거운 것입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복수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암논의 죄는 분명히 큰 범죄함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앞에서 저지른 죄악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복수, 암논을 죽인 살인은 더 큰 범죄함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억울하고 부당한 상처앞에서 묵묵히 바보처럼 참아야하는가?
손양원목사님의 스토리가 생각납니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 때 손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은 우익 학생 단체 중 하나인 전국학생연맹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를 안좋게 본 반란군 세력이 당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을 순천에서 살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순간이었겠습니까?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 그 사람에게 얼마나 분노하고, 복수하고 싶었을까요?
그러나 손양원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라는 사람을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이런 용서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복수가 아닌 용서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억울함과 분노와 복수의 혈기가 끌어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 모든 마음의 아픔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겨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