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만남(삼하14:21-33)
2022년 10월 12일(화) / 매일성경 / 사무엘하 14장 21-33절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삼하14:24)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압살롬과의 대면을 피한 다윗(21-24)
다윗은 요압의 원대로 압살롬을 데려오는 것을 허락합니다.
요압은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게 됩니다.
드디어 압살롬이 다윗과 만나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단호하게 압살롬을 집으로 가게 하고, 자신앞에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가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다윗에게는 두 마음이 공존했을 것 같습니다.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도 물론 있었겠지만, 여전히 다른 아들 암논을 죽인 죄에 대해 용서가 안된 것입니다.
만약 압살롬이 다윗의 눈 앞에 띄게 될 때 다윗은 압살롬을 그 자리에서 처형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압살롬과의 대면을 피한 것이 아닐까요?
2. 자기필요에만 집중하는 압살롬(28-32)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 다윗을 뵙지 못하고, 왕궁으로 출입하지 못한 압살롬이었습니다.
그술에서의 3년,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느날 압살롬은 종을 시켜 요압을 부릅니다. 그러나 요압이 답이 없자, 요압의 보리밭을 태워버립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모습에 압살롬은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로 해석했고, 요압의 보리밭을 태워버림으로 그 심리상태를 표현합니다. 매우 이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아 때를 쓰는 것 같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에게 이제 아버지 다윗을 만나야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처지가 답답해서 당장이라도 해결하려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는 결정적으로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32)
자신은 잘못이 없고, 죄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형 암논을 죽인 범죄함을 잊은 듯 합니다. 어쩌면 아버지 다윗이 다시 돌아오도록 허락했다는 사실이 용서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3. 끝내 다윗과 만난 압살롬(33)
결국은 압살롬의 원대로 다윗 왕앞에 압살롬이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압살롬과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은 오랜만에 만난 부자간의 인사이기도 했지만, 표면적인 화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두려워하는 아들이 이제 아닙니다.
그 아들의 엇나간 마음은 분노로 바뀌게 됩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압살롬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우리는 회복되었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오해하고는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고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나 중심적인 해석을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앞에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결코 회복될 수 없습니다.
내 유익과 이익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삶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엎드려 회개하며 돌이키는 것을 기다리십니다.
나의 필요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에 집중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