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偏愛)로 깨어진 샬롬
2020년 9월 1일(화) / 매일성경 / 창세기 37장 1-17절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창37:3-4)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창37:11)
몇 해 전 야구심판이 뒷돈을 받고 돈을 받은 팀에 유리한 판정을 해서 결국 해당심판은 심판자격을 정지당하고 구속되어 수사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운동경기에 있어서 편파판정은 스포츠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특정팀이나 선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면, 불리한 판정을 당한 팀과 선수들은 결국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과 심판은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가리고,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편파판정'까지는 아니지만 '편애(偏愛)'로 깨어진 관계가 등장합니다.
바로 야곱(이스라엘)과 그의 아들들의 관계였습니다.
옛말에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자신의 아들들 모두가 사랑하는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사랑한 리브가의 소생 요셉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랑의 표현이 지나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편향적인 애정은 관계와 평화를 깨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 야곱에게 모두 일러 바쳤습니다.
야곱은 당시 아무나 입기 힘든 소매가 긴 채색옷을 요셉에게 입혔습니다.
아마 요셉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이런 요셉이 정말 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요셉은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형들에게 밭에 곡식 단을 묶었는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7절 새번역)
또 한 번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하였어요"(9절 새번역)
형들은 편애하는 아버지와 요셉에게 분노를 느꼈지만, 요셉의 꿈에는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분노에 눈이 가리워졌고, 시기에 귀가 닫아졌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그의 가족을 회복시키시고, 인도 해 가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존 비비어(John Bevere)의 [관계를 위한 묵상]이라는 책에 보면 우리는 복잡한 인간관계속에서 사탄의 덪으로, 자존심으로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처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사람들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저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그 상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법에 지배를 받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상처 없이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 낙망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다시 희망을 찾아내서 성숙이라는 성공을 이루어낸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그랬고, 위인들이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상처의 아픔을 이겨내고 삶의 기쁨을 만들어갈 수 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억울함으로 다가오는 상처와 고통속에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낙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인생을 맡기고 드릴 때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 내면의 아픔과 상처를 주님께 내어 맡기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