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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광풍을 만났을 때(행27:1-20)

by James Cha

2024년 6월 27일(목) / 매일성경 / 사도행전 27장 1-20절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행27:11)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행27:20)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 이끄시는 하나님(1-20)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죄수의 신분으로 압송되어 가게 됩니다.

로마까지의 거리는 약 4000km나 되는 긴 항해를 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네가 예루살렘에서 증언한 것과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성취해 가십니다.

비록 죄수의 신분이지만 바울이 로마에서 해야 할 일을 끝내 이루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이사랴 북쪽 시돈으로 가서 시돈 항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합니다.

로마로의 여정에 함께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 다른 죄수 몇 사람도 동행했지만 1절에 '우리가'라는 표현을 보면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도 함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했는데 그는 앞선 사도행전 19장 29절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큰 소동이 일어나 사람들에게 잡혔던 사람이 두기고와 아리스다고였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 쫓김을 당하고 피해 다닐 떄 두로아에 먼저 가서 준비했던 사람이 아리스다고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곁에 누가 그리고 아리스다고와 같은 동역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인 - 본문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1.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은 백부장(1-12)

바울을 포함한 죄인들을 로마까지 호송하는데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라는 사람이 책임자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아구스도대는 로마 황제의 직할부대였습니다. 

죄수들을 태운 배는 시돈을 떠나 구브로 섬의 해안을 거쳐 지금의 튀르키예 남부 해안을 따라 무라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당시 무라라는 곳은 큰 배를 갈아타는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그곳에서 바울 일행도 무라에서 알렉산드리아라는 큰 배로 갈아타고 다시 북서쪽 로마로 출항합니다.

그러나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을 만나 간신히 그레데 섬 아래의 미항이라는 곳에 다다르게 됩니다.

 

바울은 여러번 지중해를 항해하며 전도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기에 지금의 9월에서 10월사이에 항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정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11월이 넘어가면 한겨울에는 꼼짝도 못할 계절이 찾아옵니다.

바울은 더이상 항해를 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백부장에게 여기서 잠시 쉬는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불과 65km 떨어진 그레데 섬의 북쪽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2. 광풍을 만난 배(13-20)

미항을 떠나려고 하니 풍랑이 잔잔하고 남풍이 불어와서 기분 좋게 다시 항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유라굴로라는 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순식간에 배는 강한 바람에 밀려 바다 한 가운데서 길을 잃었습니다.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작은 나룻배(거루)를 끌어 올려 배에 매달았지만 거센 바람을 뚫고 갈 힘이 없었습니다.

사공들은 짐을 바다로 내던지고 결국은 3일째 되는 날 배의 기구들을 버렸습니다.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으로 인해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방향도 날짜도 지중해 바다 한 가운데서 고립되었다는 말입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바울과 일행은 큰 광풍을 만나 고초를 겪게 되었습니다.

미항을 떠날 때만해도 바람이 잔잔하고 게다가 남풍까지 불어주면서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그라나 광풍은 한순간에 몰아닥쳤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은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잘 풀리고 계획한대로 잘 되어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예상치못한 풍랑을 만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철저히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신뢰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됩니다.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선장과 선주의 말을 신뢰하는 것이 당연해보이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당연하고 합리적인 것 이외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베드로와 예수님이 만났던 장면이 떠올려졌습니다.

베드로는 수십년을 어부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갈릴리 바다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베드로가 그물을 정리하고 있는데 새벽 미명에 예수라는 사람이 오른 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누가 더 전문가입니까? 누가 누구에게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까?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선주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바울의 말을 들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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