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 Story
예루살렘 입성, 예수님의 눈물(눅19:28-48) 본문
2025년 4월 6일(주일) / 매일성경 / 누가복음 19장 28-48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19:41)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눅19:45-46)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 겸손하신 예수님(28-36)
예루살렘에 다다르자 예수님은 감람원이라 하는 벳바게와 베다니로 제자를 보내셨습니다.
그곳에 이르러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 한마리가 매어 있는 것을 가져오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고 답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귀를 가져왔고,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다는 것은 예수님 스스로가 예언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당시 장군들은 말을 타고 전쟁의 승리자로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귀를 선택하셨고, 나귀는 겸손과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힘으로 정복하는 정치적 왕이 아니라, 마음을 정복하는 겸손의 왕,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2. 긍휼하신 예수님(41-44)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며 우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고 참 평화의 길 대신 정치적 기대와 종교적 외식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졌지만, 정작 참된 평화이신 예수님을 몰랐고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이 곧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이 심판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거절한 결과인 것입니다.
진리를 눈앞에 두고 외면하는 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탄식의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3. 분노하신 예수님(45-48)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물건을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책망하십니다.
당시 성전에서 매매하는 일은 일반적인 모습이었지만 이들은 성전 안뜰, 즉 이방인이 예배하는 공간까지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상인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하여 장사를 독려하고 그로 인해 이익을 취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부패한 행태에 대해 분노하시며 장사판을 뒤엎으십니다.
그리고 두 가지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하나는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뿐만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인 성전이 주객이 전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겉으로는 성전에 나아가지만 결국은 형식과 행위만 남은 부패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인 - 본문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1.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는 사람들(37-40)
예수님께서 초라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나귀에 안장 대신 자신의 옷을 깔고, 나귀를 타고 가시는 길에 자신들의 옷가지를 펼쳐 왕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환호하며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환호하며 소리쳤습니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 "제발 우리를 구해주소서!"라는 의미의 외침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정치적인 왕, 민중의 영웅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사람들이 외친 "호산나!"에는 유대 민족들의 기대와 희망, 그리고 찬양이 뒤섞인 외침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제자들을 자제 시킬 것을 요구하지만, 만일 이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말씀하십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예수님의 눈물의 의미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아셨음에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예수님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이고 가셔야 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냉담하게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 회개의 기회를 저버린 채 장차 멸망의 성이 될 에루살렘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진정한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깨닫길 바라시는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누가 그들을 위해 울어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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