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 Story
분노와 침묵 사이(눅20:19-40) 본문
2025년 4월 8일(화) / 매일성경 / 누가복음 20장 19-40절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눅20:25)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눅20:38)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 지혜로우신 예수님(25-26,34-40)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 당시 종교와 정치의 권력을 쥐고 있던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매우 불편하게 들려졌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 권위에 대한 논쟁과 악한 농부들의 비유가 자신들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민중들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을 꺼려했고, 헤롯 당원은 친로마적인 정치세력들이었습니다.
이 두 세력이 에수님을 제거하고 공격하기 위해 연합한 것입니다.
이들은 세금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며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또한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대한 논쟁을 통해 예수님을 코너로 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답변을 통해 침묵하게 만드셨습니다.
[인 - 본문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1. 세금에 대한 논쟁을 벌인 종교지도자들(19-26)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 "세금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은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세금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시면 그것은 유대 민중들에게 반감을 주는 답변일 것입니다.
반대로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자로 고발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어느쪽을 선택하든 예수님이 불리해지는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라는 이 한마디의 말씀으로 논쟁을 끝내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세금을 누구에게 바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던 위선과 두 마음을 정면으로 찌르는 말
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은 가이사에게 바쳐야 할 세금은 조목조목 따지면서, 정작 자신이 하나님앞에 드려야 할 것들은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충격을 받았고, 무력감을 느꼈으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2. 부활에 대한 논쟁을 벌인 사두개인들(27-40)
사두개인들은 유대사회의 귀족계층이며 성전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만을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렇기에 부활도 천사도 영적세계도 부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오경에 나오는 계대결혼법을 근거하여 부활의 개념을 조롱하며 질문합니다.
구약시대의 계대결혼법은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자식을 낳아 형의 이름을 잇는 법이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취하는데 이 여자가 일곱 형제와 차례로 결혼했지만 모두 죽고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입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부활이 진짜 있다면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은 이 세상의 질서와 다르다고 답변하십니다.
부활의 삶은 이 세상의 연장선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결혼과 출산과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은 이 땅에서 필요한 질서일 뿐,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모든 것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두개인들의 이 질문 자체가 엉뚱한 질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인정하는 모세오경의 말씀을 통해 부활의 근거를 드러내십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아래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칭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과거형으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는 현재형으로 말씀하십니다. 다시말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여전히 하나님앞에 살아있는 존재이며 이것이 곧 죽은 자의 부활을 전제로 한 고백인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의 답변에 마찬가지로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종교지도자들의 '분노와 침묵 사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존재로 인해 분노하며 곤경에 빠뜨려서 제거되기를 바랬던 마음과 예수님의 답변으로 인한 자신들의 오만하고 이중적인 모습 사이에서의 침묵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어쩌면 우리도 우리의 기득권을 위해 자신들이 세운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침묵하고 있는 자들은 아닌지를 돌아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 직면할 수 있는 용기, 주님의 말씀앞에 돌이킬 수 있는 믿음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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