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 Story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가?

by James Cha

2022년 2월 4일(금) / 매일성경 / 요한복음 10장 22-42절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도 더 크시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다"(요10:28-30, 표준새번역)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

1. 주관자 하나님(25-26)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이었고, 유일한 구원의 길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영생이 허락되어집니다. 영원토록 멸망당하지 않는 놀라운 자격이 주어집니다.

어느 누구도 이 구원을 무효화 할 수 없고, 영생의 선물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2. 하나이신 삼위일체 하나님(30)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세 분의 위격을 갖고 있지만 하나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3 person 1 nature)예수님은 "내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셨지만, 그분 자체는 하나님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25-26)

수전절, 봉헌절이라고 하는 유대인의 절기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안의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주변을 애워싸고 당신 예수가 진정 그리스도라면 밝히 보이라 우리를 마음을 더이상 혼란스럽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이 표현은 온화한 표현이 아닙니다. 부탁하듯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이들의 불신은 점점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번 내가 그리스도(메시야)라는 사실을 너희들에게 보여주고 말해주었지만, 여전히 너희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25)예수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결국 이들은 끝가지 예수님을 부정할 사람들입니다.

구원의 문을 벗어난 각기 제 길로 간 양들입니다.

 

2. 분노하는 유대인들(31)

예수님을 미워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이제는 예수님을 향해 분노를 쏟기 시작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이다라는 말씀을 마치자(30),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신성모독, 하나님을 모독하는 발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3. 예수님을 잡고자 하지만 잡지 못하는 유대인들(39)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한 두명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먼 거리에 있었던 것도 아닐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 자리에서 결박하여 체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피하셨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피하셨을까? 이리저리 공간이동을 하신 것일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이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운데 자리를 피하게 되신 것 같습니다.

 

4. 예수님께 몰려간 무리들(40-42)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든 이들이 있었고,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지역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단강 건너 침례 요한이 처음 침례를 베풀던 곳으로 가시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와 요한이 증언한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예수님이라는 말에 그 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분노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무엇에 그리도 열심일까? 무엇을 지키려고 한 걸까?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참 불편한 존재였을 것 같습니다.

나는 무엇때문에 분노하는가?를 돌아봅니다.

혹시 나도 내 이익을 위해, 내 체면을 위해, 내가 누리는 것을 위해 분노할 때가 있지 않는가?복음 때문에 분노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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