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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신 예수님(마9:1-13)

by James Cha

2023년 2월 7일(월) / 매일성경 / 마태복음 9장 1-13절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3)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 치유하시는 예수님, 죄 사하시는 예수님(1-6)

한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말씀만으로 고치셨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며 의심하던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신성을 모독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속마음을 이미 아셨고, 그들을 향해 왜 악한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라 하는 말중에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말은 모두 하나님 외에는 하실 수 없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치유를 행하심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확실한 사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2. 죄인을 부르신 예수님(9)

예수님께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라는 사람을 보시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민족의 반역자요. 백성들의 착취자로 낙인찍힌 사람이었고, 종교적으로도 죄인의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런 마태를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마태는 즉시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마태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자신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게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를 불편하게 여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해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라고 추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사랑이 없는 제사,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종교적 행위가 얼마나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인지 호세아 선지자의 경고가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그의 친구들(1-2)

마태복음에서는 자세하게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같은 상황을 기록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도저히 출입구로 들어올 수 없게 되자,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지붕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침상을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게 됩니다.

일평생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오기 위해 매우 과감한 행동을 했던 이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2)

예수님께 나아가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예수님이라면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의 말씀으로 중풍병자를 고치십니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시자 마자 중풍병자는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나갑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치유의 권능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2. 예수님에 대해 의구심과 불만을 갖은 서기관들, 바리새인들(3,11)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하고, 실제로도 믿기지 않는 치유의 기적들이 일어나게 되자 예수님에 대해 강력한 의구심을 갖고 불만을 갖게 됩니다.

어찌보면 자신들은 서기관으로서 백성들을 향해 그 결과를 증명할 수 없는 사죄의 선언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발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일어나 걸어라'는 기적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질투의 마음을 느꼈던 것 아닐까요?

 

게다가 사회적 죄인으로 낙인찍혔던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교제하시는 모습이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꼴보기 싫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정한 죄인과 어떻게 겸상을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마지막 희망을 갖고 수술대 위에 오르는 것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속에 있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서기관들은 나는 깨끗하고 마태와 같은 세리는 부정하고 더러운 죄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것에 대해 저속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보실 때 죄인입니다. 부정한 인간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범죄한 우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부르시고, 우리가 그 음성앞에 응답하고 나아갈 때 기쁨으로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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