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d Notebook

빛보다 어두움을 택한 자들

by James Cha

2020년 3월 28일(토) / 매일성경 / 마가복음 11장 20-33절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11:33)

 

예수님이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자, 예루살렘성은 발칵 뒤집어졌을 것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장로들은 예수님의 이런 행동을  마치 신성모독적인 행위로 간주했을 것입니다.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그들이 당시 사회적으로 누리고 있던 기득권에 대한 반발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모의하고 있었습니다(11:18). 그러나 딱히 방도를 찾지 못하던 중 그들이 예수님을 코너로 몰기 위해 생각해 낸 질문이 '권위'에 대한 질문입니다.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권리를 받았다"라는 말씀을 하신다면, 바로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되기에 이를 빌미로 신성모독죄로 처벌할 꺼리를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같은 질문을 반문하시면서 그들의 동기를 드러내셨습니다.

"요한의 침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이 질문에 진퇴양난(退難)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사회적,종교적 포지션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속임수와 시기심을 은폐하며 체면을 유지하는데 급급했습니다. 

침례 요한의 죽음에는 그들의 책임이 있었습니다. 침례 요한을 석방시키려고 하지도 않았고, 헤롯왕이 요한을 살해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질문에 대답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것이니라"(요3:19)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 또 한번 체면을 유지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모습에 굳이 대답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인간은 참 나약한 존재임을 다시한 번 깨닫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빛을 어두움으로 가리려고 어두움속으로 들어가는 어리석은 자와 같습니다.

빛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빛이 비추면 자연스레 어두움은 물러가게 됩니다.

언제까지 어두움으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빛되신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앞에 설 때에는 체면, 위치, 권위 그 어떤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앞에 긍휼을 구하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때에 주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주십니다.

 

[적용]

내가 주님앞에 감추고 있는 죄의 문제는 무엇인가?

 

'영성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때  (0) 2020.04.01
삼가야 할 것과 배워야 할 것  (0) 2020.03.31
잎만 무성한 예배  (0) 2020.03.27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0) 2020.03.26
영생을 얻으려면..  (0) 2020.03.26

블로그의 정보

Worship Story

James Cha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