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에 대한 경고(단5:1-16)
by James Cha2022년 11월 11일(금) / 매일성경 / 다니엘 5장 1-16절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촞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단5:5-6)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 경고하시는 하나님(5)
갑자기 벨사살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앞선 본문과 오늘 본문사이에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배경은 이렇습니다.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손자로 아버지 나보니더스가 원정을 떠난 동안 아버지를 대신하여 바벨론의 왕위에 오른 왕이었습니다.
학자들마다 발사살에 대한 의견이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나보니더스의 아들 벨사살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나보니더스의 아들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또 5장 22절에 보면 벨사살을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에서 아들의 개념을 좀 더 광범위한 개념으로 표현했고, 우리말로는 손자 혹은 자손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벨사살이 통지하고 있던 당시의 바벨론은 당시 신흥 제국인 바사(페르시아)와 전쟁 중이었고, 수도는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포위당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벨사살은 이런 위기에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분별하지 못하고 귀족 천 명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심지어 조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과 은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여 귀족들과 왕후와 후궁들이 술을 먹고 마시는데 흥청망청 사용합니다.
게다가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우상들을 숭배하고 찬양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벨사살을 심판하시기 위해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흥청망청 술파티가 벌어진 그 때에 왕궁의 촛대 맞은 편 석회벽에 사람들의 손이 나타나서 글씨를 쓰는데 벨사살 왕은 깜짝 놀라 낮빛이 변하고 두려워 벌벌 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발사살의 교만함을 두고보실 수 없으셨습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서 구별된 성물을 술로 탕진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가만 두고 보실 분이 아닙니다.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교만하고 오만한 벨사살(1-4)
아주 교만하고 오만한 벨사살의 모습이 오늘 본문속에 그려져 있습니다.
조부인 느부갓네살의 영광을 등에 엎고 전혀 국정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왕의 자리에서 쾌락과 환상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바벨론이 전쟁중이었고,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바사(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앞두고도 왕실에서 술파티를 벌이고 있는 왕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교만하고 오만한 벨사살은 예루살렘 성전안에 있는 금과 은그릇까지 팔아먹으며 술에 취해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벨사살의 오만함은 결국 그의 조부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처럼 심판하실 것입니다.
2. 두려움에 빠진 벨사살(5-9)
한참 술에 취해 있을 때 왕궁의 촛대 맞은 편에 있는 석회벽에 어떤 사람의 손이 나와 글씨를 씁니다.
때마침 벨사살은 정확하게 그 글씨를 쓰는 손가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술과 파티를 즐기던 벨사살은 얼굴 빛이 변하고, 그의 넓적다리는 힘을 잃고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또한 무릎끼리 서로 부딪히면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벨사살은 즉시 바벨론에 있는 술사와 점쟁이들을 불러모아 그 글씨를 해석하게 하지만 아무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점점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만한 인간의 최후의 모습입니다.
그 때 왕비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왕비는 아마도 느부갓네살의 왕비로 추측됩니다. 그녀는 벨사살에게 다니엘을 소개해주고, 다니엘이 다시 한 번 바벨론의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교만은 하나님위에 나를 세우는 행동입니다.
교만의 끝은 나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나를 가장 최고의 자리에 두고, 가장 높은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 용어 중에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기애로 가득하여 나중에는 나를 숭배하기까지하는 극단적인 자기애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벨사살의 행동은 마치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하나님앞에서 교만함과 오만함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교만은 결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결정권은 내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여전히 나를 위해 살아가려고 아등바등하지는 않습니까?
내 안에 하나님이 아닌 나를 가장 높은 자리에 두고자 하는 영적인 교만함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교만에 대해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앞에 경외함으로 회개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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