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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한 자와 견디는 자(단11:20-35)

by James Cha

2022년 11월 24일(목) / 매일성경 / 다니엘 11장 20-35절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단11:33)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 때를 따라 인도하시는 하나님(27,35)

다니엘의 환상은 계속 이어집니다.

알렉산더 대제 이후 남방 애굽의 프톨레미와 북방 시리아의 셀류쿠스의 시대에는 서로 대립하며 전투의 승리와 패배를 나눠지게 됩니다. 이후 북방의 셀류쿠스 4세의 뒤를 이은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등장은 많은 애굽의 병사들을 죽였고, 결국은 에피파네스의 비열한 승리로 전리품을 빼앗기게 됩니다.

 

에피파네스는 유다 지역에 만행을 저지르고 여호와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박해를 가하게 됩니다.

성전을 더럽히고 날마다 드리는 번제를 폐하고 흉측한 파괴자 우상(제우스) 신상을 성전 한 가운데 세웁니다.

거룩한 언약을 배반한 자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워 헬라화 정책을 주도하게 합니다.

점점 유다 지역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목을 조여갔습니다.

불의한 왕, 잔혹하고도 비열한 왕 에피파네스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이 모든 것을 허용하신 하나님

왜 이 불의함을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일까?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들이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화형에 처하기도 한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 회복의 때, 구원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때를 따라 인도해 가시는 분이십니다.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비천한 자 에피파네스(20-27)

셀류쿠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를 향해 하나님이 그를 비천한 사람이라 평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그의 신분이 비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행동이 하나님이 보실 때 비천했던 것입니다.

그는 거짓과 속임수로 어떻게하면 권력을 탈취할 수 있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조카를 임시방패막이로 내세우고 조카를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바로 에피파네스입니다.

그의 악독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큰 죄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비천한 사람, 비루한 사람이었습니다.

욕심의 끝은 사망입니다. 정욕의 끝은 패망인 것입니다.

 

2. 견디는 자들(32-35)

중근동 세계열강들의 끝없는 전쟁과 탐욕속에서 한 줄기의 빛과 같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에피파네스의 핍박과 강력한 군대는 이들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게중에 어떤 이들은 핍박에 못이겨 굴복하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이들은 맞서 싸우다가 칼에 엎드려지고, 약탈을 당하고, 치욕스러움을 견뎌야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 건 싸움을 싸워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남겨진 자들, 곧 하나님을 아는 백성 지혜로운 자들은 환란과 핍박중에도 더욱 강하여졌습니다. 

연단의 때를 지나 순결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바로 남겨진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남겨진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온전히 이루십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지금 눈 앞에 보여지는 권력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언제일지 알지 못하지만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우리의 삶은 항상 이 양갈래의 기로속에 놓여 있습니다.

머리로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정답임을 알지만, 작은 유혹속에 타협하고 넘어지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있지 않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다시금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며 우리의 초점이 늘 주님을 향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바로 회복의 상급일 것입니다.

성전을 회복하고, 예배를 회복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상급이고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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