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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온전하라(마5:23-49)

by James Cha

2023년 1월 29일(주일) / 매일성경 / 마태복음 5장 23-48절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3-44)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 공평하신 하나님(44)

일반은총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이 차별이 없이 모든 이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과 자연과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일반 은총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구원받을 사람들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해를 선인과 악인에게 동일하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자나 불의한 자에게 동일하게 내리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차별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우리 또한 닮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2. 온전하신 하나님(48)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그의 자녀들인 우리도 온전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온전해질 수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는 절대 온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의로운 행위나 노력으로도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일을 많이하고, 옳은 일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과 동기안에 사랑이 없으면 온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온전할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그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의 은혜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갈 때, 그 사랑이 우리를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4:12)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맹세를 거듭하는 이들(33-37)

율법은 하나님께 맹세하고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맹세 자체를 아예 금하라 말씀하십니다. 

잘못된 맹세, 거듭된 맹세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맹세 대신 "예", "아니오"를 분명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언어적 표현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말은 하나님앞에서 맹세하는 것처럼 정직해야 합니다.

 

2. 보복하는 이들(38-42)

'해를 준 자에게 생명은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린 것으로 갚게 한다.'는 것은 구약의 레위기와 신명기의 율법에서 다루어진 내용입니다.

이를 동해보복법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원래 법정 재판에서 죄에 해당하는 공정한 벌을 부여함으로 개인적인 보복의 악순환을 방지하고자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넘어서는 말씀을 주십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속옷을 가지려 하거든 겉옷까지 내어주라, 너와 오 리를 가고자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라."

너무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닌가? 너무 속 없는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일 것입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면 이 같은 사랑이야말로 증오의 사슬을 끊고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며, 율법의 참 뜻을 완성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3. 원수를 사랑하는 이들(43-48)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의 핵심에는 '이웃 사랑'을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들을 대적하거나 보복하지 말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더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이 그러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온전함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이 미치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 온전함의 은혜를 입었고, 닮아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온전함대로 우리의 이웃을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이 세상의 선함보다 더 높은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선함보다 더 높은 차원입니다. 

세상은 먼저 선을 베풀라는 교훈을 주지만, 용서의 차원을 넘어 더 사랑하라는 것은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러한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인류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에 예외를 두지 않으셨음을 기억합시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가? 

맹세를 하지 않거나 보복하는 것을 멈추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명령은 쉽게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일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에 매우 동의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이익과 요구에 따라 기독교인들이 손해를 보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했었습니다.

도리어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에 대한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는 모습이 부당하게 여겨지기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사람들이 바로 세상의 사람들, 원수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주장, 나의 판단기준을 내려놓고,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주님이라면 저들을 사랑하셨을까? 주님이라면 저들을 어떻게 대하셨을까?

곰곰히 묵상해보는 하루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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